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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 0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책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추천하는 글이 아니라 밑줄 그은 부분들을 상기하는 포스팅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질문은 주로 '무엇을'과 '왜'에 관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엔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러므로 중요치 않은 질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정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지?

-'무엇을'이나 '왜'에 관한 질문이 중요치 않은 질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을 일상에 적용시키니 생각의 질이 올라간 것만 같았다. 일을 한다면 난 어떻게 일할 것인가. 공부를 한다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단순히 방법을 생각하기보다 내 삶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자세를 한층 성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질문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인들은 모든 것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모든 것에 자기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그 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제 철학은 우주에 대한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좀 더 이뻤다면? 성격이 쾌활했다면? 그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봤을 때 나 또한 아테네인들처럼 조각상의 제작에나 신경 썼던 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뭘까? 악은 왜 존재하는 거지?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닌 보다 큰 것, 바로 의미다.

-사랑이 뭔지, 악은 왜 존재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나만의 답을 정의 내리고 내가 가장 가치 있게 보는 사랑의 종류라던가, 가장 멀리하는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의미 있는 일이란 것.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무례한 사람은 무례한 질문을 한다. 친절한 사람이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질문은 나와 가장 닮은 말.

그래서 면접관들이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는지 물어보는 걸까^^..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있다.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멈춤은 생각의 씨앗이다. 열심히 하려고 막 달릴 때는 잘 모른다 내가 잘 달리고 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상황이 지나고 나서야 새로운 최선책을 발견하고는 아쉬워했었는데 멈췄기 때문에 비로소 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뿐이다. 다시 달릴 때는 새로 발견한 최선책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는 명백한 것은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궁금하지가 않기 때문에 질문할 생각조차 못한다. 너무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궁금해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질문할 수 있다. 명백한 사실이라는 함정에 궁금해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멍청한 질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야"

-답을 알고 있다면 왜 질문을 할까? 내가 아는 답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인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잘못된 양육을 비롯한 모든 악행은 악의 무지에서 나온다.

-초등학생 때는 잠자리 날개를 때거나 지렁이를 장난감 총으로 맞추고 노는 애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게 잔인하고 못되게 느껴졌었다. 잠자리, 지렁이가 해충인지 익충인지는 상관도 없고 그저 순간의 유희거리였는데 몸통이 잘려 꿈틀대던 지렁이를 웃으며 보는 모습이 아직도 깨름찍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아이의 질문이 성가신 것은 멍청한 질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제대로 대답할 능력이 없어서다.

-위의 멍청한 질문이란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아이는 멍청한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중학생 때 엄마 지인분이 아기를 낳으시고 집에 자주 놀러 오셨는데 아이가 두세 살 말문이 트이자 폭풍질문을 하는 시기가 왔다. 거실에서 아이는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이게 뭐야? 왜?를 반복한 질문을 남발했는데 그게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름은 알지만 어디 사용하는지 모르거나 또는 이름은 모르지만 사용방법은 아는 물건들이 꽤 있었고 내가 그걸 모른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아이의 질문은 졸던 수업시간 선생님의 갑작스런 질문과도 같았고 약간의 수치심도 들었던 것 같다. 

 

*"왜 성공하고 싶어?"라거나 "얼마나 성공해야 충분한 건데?"라고 물어볼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제니퍼는 내게 그렇게 묻지 않았다. 성공이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왜 성공하고 싶냐고 물으면 성공하기 싫은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지나간다. 성공이 어떤 모습이냐고 하면 다양한 성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중 내가 원하는 성공은 어떤 모습인지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쾌락의 역설을 설명했다.

-나는 자아성찰을 습관적으로 하는 성격인데 어떤 날에는 이런 생각 없이 현재만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분명 나를 성장시킨 습관이지만 나를 순간에 정체시키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을 느낄 때도 많았는데 존 스튜어트 밀의 쾌락의 역설이 이런 걸 설명한 게 아닐까?

 

*내 본능은 이 질문의 답을 재빨리 찾아내서 내 해야 할 일 목록에 줄을 긋고 다음 할 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

-지금도 내가 어떤 감명이나 공감을 해서 발췌한 부분들에 대한 느낀 점을 적는 건데도 머리가 팽창된 기분이 든다.